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서소문 포럼] 동맹인가, 봉인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때만 해도 한·미 간 분위기는 온통 장밋빛이었다. 바이든의 5월 20일 방한 첫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이, 22일 방한 마지막 날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장식했다. 한국 정부는 경제와 안보가 하나된 미국 새 정부 어젠다의 주역은 한국기업이라며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4개월 만에 상황은 급반전됐다. 미국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한국 바이오 업계를 옥죌만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쇼크에 빠졌다.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땡큐, 땡큐”라고 감사 인사를 들었던 터라 한국 기업과 정부에 이런 상황은 더욱 충격으로 다가온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이 중국을 대신할 핵심적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걸까. 결국 현재 일련의 미국 정부 움직임을 꿰뚫고 있는 키워드는 ‘중국 배제’인 동시에 ‘미국 경쟁력 키우기’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전기차(배터리)·바이오 등 한국 기업이 강점을 가졌거나 거액을 투자해 힘을 쏟는 분야만 미국이 골라서 공략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 분야가 앞으로 최소 수십년간 한국, 미국 등 주요 국가 경제를 먹여 살릴 핵심 성장 동력 분야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기업은 미국 기업의 이 분야 주요 경쟁자다.   바이든 새 정부가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강조하면서,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강화 조치를 취할 거라는 조짐은 바이든 취임 전부터 일관되게 지속해서 나타났다. 그래서 한국 기업도 속도감 있게 움직였고, 현대차의 조지아 공장 전기차 투자, 삼성전자의 텍사스 테일러시 제2반도체 공장 투자, SK의 투자 등이 발 빠르게 결정됐다. 이런 모든 조치에도 한국 기업들에 이렇게 불리한 입법 조치가 이토록 일사천리로 이뤄질지 한국 기업과 정부 누구도 예상을 못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다음 미국 대통령의 행정 명령이 뭐가 될지, 어느 수준으로 한국 기업을 옥죌지에 한국 외교당국은 전혀 정보를 줄 수 없는 수준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워낙 초스피드로 통과돼 미리 대비할 수 없었다.”(국내 외교 당국자)의 솔직한 토로가 있지만 상황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대통령실과 백악관을 잇는 ‘경제안보대화’ 채널을 신설하는 등 경제와 안보가 하나 되는 새로운 한미 동맹 시대에 대비해보겠다고 한 한국 정부의 방향성은 맞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실력이 부족했고, 시간이 부족했다.   ‘경제 동맹의 한축’은 미국 현지에 투자하고 미국 국민에게 이익이 될 때 유효할 뿐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지금이라도 인지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기업에 위협으로 작용하는 외국 기업은 국적을 망라하고 정부가 지원해 상황을 바꿔놓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식의 ‘희망 고문’만 거듭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협의하다 안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검토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말도 그야말로 레토릭일 뿐이다. WTO 제소 절차의 결론이 나오기까지엔 수년이 걸린다. 결론이 나기도 전에 국내 기업이 미국 현지에 짓는 공장은 2025년 완공된다. 미 정부가 주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실제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한국 기업에 그리 불리한 상황은 아니지 않냐”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에 “언제는 프렌드쇼어링(동맹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강조하더니 뒤통수를 때리느냐”고 읍소할 수 있겠지만, 동맹을 강조한 이 논리는 별로 먹힐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어필하면서 미국 소비자의 피해를 호소하는 편이 논리적으로 타당할 듯하다. 결국 모든 미국 정부의 결정은 미국의 이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선 단기적으로 각자도생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미국 워싱턴DC의 현지 정보 수집력을 강화하고 로비력을 높이는 방안밖에 없겠지만, 이게 당장 얼마나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런 위기의 와중에 한국 정치인들이 미국 의원들과 선을 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미국 의원들이 없든지, 아니면 국내 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최지영 / 한국 경제에디터서소문 포럼 동맹 동맹중시 한국 정부 한국 기업들 정부 어젠다

2022-09-18

[서소문 포럼] 문재인 정부가 되살린 국보법

더불어민주당은 국가보안법을 반시대적인 족쇄로 간주한다. 지난해 10월 민형배 의원(현재 무소속)의 대표 발의로 민주당 등 21명 의원이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을 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정권 안보 유지 수단이자 정치적 반대 세력과 의견을 처벌하는 도구로 악용되면서, 수많은 시국 사건 및 용공 조작 사건들을 양산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을 탄압하고 국민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이유를 들었다.   민주당은 탄핵 역풍으로 원내 과반을 얻었던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4년에 국보법을 대폭 바꿀 기회가 있었다. 당시 총선 압승으로 기세를 잡은 노무현 정부와 여당은 국보법 폐지를 포함한 4대 개혁입법을 내걸었다. 세에 밀린 한나라당이 국보법 대폭 손질에 동의했는데, 열린우리당 강경파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폐지를 요구하다가 “국보법 개정안이 물거품”이 됐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국보법에 대한 민주당의 거부감은 18년 전 4대 개혁입법 공방사를 돌이켜볼 정도로 질기다. 그런데 이런 역사가 있는 민주당 정부가 국보법의 존재 이유를 국제사회에 알렸다. 민주당 의원들이 국보법 폐지법안을 발의하기 불과 9개월 전인 지난해 1월 문재인 정부는 서해 피살 공무원과 관련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질의에 “월북만으로는 엄밀히 범죄가 아니지만,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월북했다면 처벌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서해에서 피살된 공무원 이대준씨의 월북 혐의는 확정된 바 없다. 고인을 놓고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월북 혐의를 주장하고 있는데 현재로선 모두 정황에 불과하다. 월북을 위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다면 왜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수복은 안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조류만으론 북으로 올라가기 어렵고 인위적인 힘이 있어야 갈 수 있다는데 고인은 철인이 아니다. 최소한 낮과 밤 하루 이상을 바다 위에 둥둥 떠서 버티면서 북을 향해 30여㎞나 움직일 수 있는 강철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분이었는지 확인된 바 없다.   가족에게도 빚보다 더 무서운 월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데 빚을 피해서 월북을 했다는 추론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내놓았던 월북 정황은 뒤집으면 ‘월북이 맞는가’라고 반문 가능한 반대 정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정황만으로 범죄자로 낙인찍는 나라가 아니다. 범죄를 확증하려면 범죄 도구 같은 물증이 있어야 하고 재판을 거쳐 혐의가 확정돼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정황만으로 고인의 월북 혐의를 굳히려 했다. 진보 진영이 그간 국보법을 악법으로 비판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정황과 심증만으로 욱여넣기 수사를 해서 국보법 위반자로 처벌해 사회적으로 매장했다는 게 진보가 주장하는 국보법 폐지 이유 중 하나다.   무엇보다 당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나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다. 진실을 확인할 당사자 조사가 불가능하니 월북 논란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확정할 수 없다’는 영역으로 남겨 놓는 게 법치주의와 인권 존중의 상식이다. 범죄 사실이 확실치 않고 당사자 확인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당국과 집권당이 일개 개인을 범죄자로 모는 것은 공권력에 의한 린치다.   민주당은 고인이 북한에서 발견된 이유를 놓고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월북 추정을 거론했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 선을 넘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다른 민감 이슈를 놓고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를 놓고 ‘불상의 발사체’라며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을 단죄하는 데 극히 신중했던 게 문재인 정부다.   또 피해호소인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중립적 표현을 만들어내 혐의 여부에 대한 판단을 피했던 게 민주당 의원들이다. 미국은 부인하는 사드 전자파에 대해선 ‘몸이 튀겨진다’며 노래를 불렀던 정당이 고인을 놓곤 월북 근거가 ‘미군 정보’에 나온다며 미군 정보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는 식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감청 정보를 근거로 주장하는데 고인이 사전에 월북을 준비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살기 위해 한 말인지 당사자 조사 없이 단언할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를 향해 자신들이 질색하던 ‘국보법 위반’을 알렸다. 민주당이 그토록 혐오하는 국보법이 민주당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원됐다. 이 얼마나 초현실적인 장면인가. 채병건 / 국제외교안보 디렉터서소문 포럼 문재인 국보법 국보법 폐지법안 민주당 정부 국보법 개정안

2022-07-17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